부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강론

by 비안네신부 posted Apr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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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날씨가 조금 흐린 부활의 주일입니다. 우리 본당 신자분이신 이종호 에드몬드 형제님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신 형제님의 안식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섭섭한 마음을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기도 합니다.

 

이번 주중 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 여자들을 통해, 엠마오를 가는 두 제자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던 제자들을 통해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복음에서 보여주시는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평일 복음 가운데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을 만났고, 그 평화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를 묵상하였습니다.

 

화요일.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에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을 먼저 알아보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 먼저 알아보아 주시는 모습에서. - 내가 하는 봉사와 섬김은 하느님께서 알아 주신다. 내가 먼저 이 가르침으로 평화를 지키며, 가족과 이웃의 봉사와 섬김을 먼저 알아 보아줌으로 평화를 전달해 줄 수 있음을.

 

수요일.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의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의 동반,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향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동행해 주시는 주님. 내가 잠시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있어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다는 가르침으로 먼저 내 평화를 지키며, 나와 뜻이 다른 이들. 배우자, 자녀, 형제, 자매들에게 함께 있으며 그들에게 평화를 전달해 줄 수 있음을.

 

목요일. 제자들에게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받아 식사하시는 이야기에서, 자리를 바꾼다..

스승과 제자의 자리를 바꾸어 줌으로써, 주님께서는 나의 처지에서 나를 보아 주신다. 이 가르침으로 나의 평화를 지키며, 나 또한 주님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역지사지의 축복을 청하며.

타인에게 내 권위를 내어줌으로써, 부모들은 자녀에게, 선생은 제자에게,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권위와 자리를 내어줌으로 평화를 전달해 줄 수 있음을.

 

금요일. 제자들을 불러 주신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는 이야기에서, 경상도 식의 표현. ‘밥 묵자.’

주님을 배신한 베드로와 그 외 제자들의 죄송과 송구함에 당신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먼저 내 죄를 살피시지 않는다라는 가르침. 이 가르침으로 내 평화를 지키며,

나도 다른 이의 부족함을 먼저 살피지 않겠다라는 방식으로 평화를 전달해 줄 수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부활 팔일 축제는 오늘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의 주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남의 부활을 주제로 그린 모든 그림들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 또한 오늘 제자들의 마음과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서 오신 것처럼, 즉 마굿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혼인 전에 임신한 한 여인의 아들로 오신 것처럼 부활하신 모습 또한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나셨습니다. 동산지기의 모습, 나그네의 모습, 티베리아 호숫가의 행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의 의심.)

 

화려한 모습이 아니어서 제자들이 주님을 못 알아 보았을까? 오늘 소위 말하는 불신자의 대명사 토마스로 그러하였을까?

우리는 부활 성야 때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굴러내시며 빈 무덤으로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심을 묵상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무덤을 막고 있는 탐욕, 진에, 어리석음, 자아라는 돌을 굴러내어 무덤에 갇히지 않고 부활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외에 다른 제자들. 즉 부활한 주님을 뵈었던 자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려 모여 있습니다.

가슴이 아픈 표현이 일면 이해가 되지만, 19절의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입니다.

 

무덤의 돌을 안 치우고 부활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모습, 아직 문을 잠가 놓고 부활한 주님을 뵈었다고 이야기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토마스는 무엇을 보았을까?

제자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저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과 평화를 전달하는 방법을 우리는 매번 부활 발현 사화이야기들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평화를 전달하는 방법을 한 가지를 더 배웁니다.

변화의 모습. 내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면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부활하신 주님을 전달할 수 없다라는 가르침.

 

주님께 청합니다. 자비의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의 방식이 제 안에 숨쉬기를. 성령의 불태우심이 나의 습관적인 죄에 머무르시기를.

 

주님. 성령을 주시니 성령을 청하옵니다.

주님. 부활하시어 새 삶을 보여 주시니, 부활을 맞이한 우리의 삶이 새로워 지기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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