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실루바 성모님발현지
종교 개혁이 유럽을 휩쓸때,
1532년 이 지역도 칼빈 주의자들에 의해 가톨릭도 개종을 강요당한다.
당시 지역 담당 < 올루브카> 신부는 철제상자를 만들어
성 모자 그림과 미사 도구와 비타우타스가 가톨릭 교회에 기증한 문서를 봉인하여
바위 근처 땅 속 깉이 파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빈 주의자들이 교회를 폐쇄하였다.
1608년 여름 목동들이 실루바 근처에서 양을 치던중
바위위에 눈물을 흘리던 아기(성자)안은 여성을 발견한다.
목동들이 집에 돌아가 자신들이 본것을 이야기하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마을사람들과 칼빈주의 목사들이 여전히 로마 미신을 믿는다고 질타했고
이는 사탄의 소행이라고 경고했다.
바로 그때 아기(성자) 안은 성모님이 발견했다.
성모발현이 지난후 얼마 되지 않아 문서가 든 상자가 발견되었고
1622년 가톨릭 교회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1775년 8월 17일 로마 교황 비오 6세의 의해 이 발현은 공적 계시로 인정 받았다.
1993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이곳을 순례하셨다.

실루바 성지 전경 : 흰색 경당이 성모 발현 기념 대성당


요한 바오로 2세님이 방문한 기념 동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의 독립 회복 2주년이 되던 1993년에
실루바를 방문하여 이 리투아니아인들의 성소에서 기도했고,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실루바를 방문하여 이 기적의 성화의 마리아와 예수님을 위한
금으로 만든 새로운 왕관을 축복하셨고,
2008년에 실루바의 마리아 발현 사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에는 교황 특사를 보냈다


발현 후 400년간 리투아니아 민족의 수호자이신 실루바의 성모님

성모 발현 바위위에 지어진 성당 (높이 44미터)
1775년 8월17일 교황 비오 6세는 실루바의 성모님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령을 발표하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대사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순례지로 공표하셨다.
1903년에는 그 당시 리투아니아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중 하나인 안타나스 비불스키스에 의해
새로운 성당이 건립되어 1924년 9월8일 성모성탄축일에 새 성당이 봉헌되었고,
현재 매년 십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실루바의 성모님을 방문하고 있다.

실루바 성당 성모 발현 기념 성당
실루바 성당은 리투아니아 뿐 아니라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가톨리 성지 순례지중 한 곳이다.
리투아니아에서 로마 가톨릭을 전파하는데 힘쓴 사람은 트라카이 성의 <비타우타스> 대 공작인데
그의 외교관이었던 <기에드 가우다스>가 1457년 실루바에 성당을세우고 가톨릭에 기증하였다.
그는 로마에서 가져온 예수를안고있는 동정녀 마리아 그림을 성당에 걸어놓았다.







전승에 따르면 실루바의 성모 성화는 ‘길의 인도자 이신 성모’ 형태로 그려졌으며
1457년 리투아니아 귀족 페트라스가 리투아니아의 실루바에 성당을 세우고
로마에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계시는 성모 성화를 가져와 모시게 된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발현한 성모님을 목격한 4명의 목동과 칼뱅교 목사

박물관에 보관 중인 울룹카 신부가 바위 옆에 묻었던 철제 궤짝

홀룹카 신부가 1532년에 파묻은 쇠 상자를 땅속에서 찾아냈는데,
거기에는 성모님의 성화와 교회의 중요 물품들과 문서들이 예전 그대로 들어있었다.
이렇게 성모님의 발현 후 가톨릭교회는 소유권을 증명할 문서들을 발견하였고,
1622년 가톨릭 소유권 및 손해 배상 소송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땅에 묻혀있던 성화를 발견한 곳,
즉 원래 성당이 서 있던 장소에 작은 나무로 만든 경당이 다시금 지어져
이 은총의 성모 성화를 모셨으며, 이후 이 경당은 여러 번 개축되고 증축되었다.

성모 발현 기념 성당 내 제단 아래에 있는 성모님이 발현한 바위
실루바 성모님 발현
리투아니아는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늦게 가톨릭을 받아들인 국가입니다.
그러나 1532년 실루바의 영주는 칼뱅주의를 신봉하여 모든 주민을 칼뱅교로 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재산은 몰수됐고, 미사가 금지되거나 성당이 폐쇄 혹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칼뱅주의가 시작되고 80년 안에 리투아니아 실루바에서 가톨릭교회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1608년 여름, 실루바의 외곽에서 양 떼를 치던 4명의 목동 앞에 성모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밝은 빛에 둘러싸인 성모님이 성자를 품에 안은 채 큰바위에 맨발로 서 계셨고,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성모님의 첫 발현은 짧게 끝났습니다.
이를 목격한 목동 중 한 명이 칼뱅교 목사에게 성모님의 발현을 전했지만, 그는 비웃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발현을 목격한 다른 목동들이 가족과 이웃에게 성모님 발현에 대해 전하였고,
다음 날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성모님을 보기 위해 그 큰바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칼뱅교 목사는 사탄의 소행이거나 가톨릭의 음모로 간주하였고 가톨릭은 미신을 믿는다며 사람들을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사람들 앞에 다시 발현하셨고 그 목사 역시 성모님 발현의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성모님 발현을 직접 보게 되자 충격을 받은 그는 용기 내어 성모님께 물었습니다.
“당신께서 왜 울고 계십니까?” 이에 성모님은 슬픈 목소리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 바로 이 땅에서 경배받았다.
그러나 이제 이 신성한 땅이 그저 농사 짓고 가축을 기르는 곳으로 전락하였다”라고 답하며 사라지셨습니다.
성모님은 이후 4년간 여러 차례 발현하셨고, 그 사실이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그동안 가톨릭 신앙을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 반성하며 회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근 주민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회개하여 가톨릭교회로 돌아왔고
1629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는 1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루바에 모여
성체를 영하는감동적인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이 되어 가톨릭교회의 재산은 반환되었고,
전 국민이 가톨릭교회로 돌아오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리투아니아는 가톨릭 신앙이 회복되어 지금까지도 가톨릭 신자 수가 전 국민의 80%에 이르는 가톨릭 국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