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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배신부

제2차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유다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었다는 아유로

콜배신부를 체포하여'죽음의 수용소라는  아우슈비츠감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있던 감방에서 한사람이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수요소규칙에 따르면 , 한명이 탈출하면 그감방의 열 명을 무작위로 뽑아

지하감방에서 굶겨죽이는 벌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지목된 열 명 가운데 한사람이

" 아, 불쌍한 집사람과 아이들을 이제다시 못보게 되었구나!"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생각지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사람의 포로가 동료를 헤치며 걸어나왔습니다.콜배신부 었습니다

그는 "저 사형수 대신 내가 죽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결국 콜배신부는 굶겨죽이는 아사 (餓死)감방에서 다른 아홉명과 함께 갇히게 됩니다.

그는 2주 이상 물과 음식없이 견디다가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둡나다

성모승천 대축일 전날이 었습니다.

콜배신부는 성모님께서 함께하신는 평소의 믿음으로 죽엄도 두려워 하지않았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목숨을 바친 신부님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2.8.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중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수용소.
그 터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으며 원래 지명은 오슈비엥침이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 아래

 

나치스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수용소 안 박물관입구

독일말로 일하면 자유롭게 된다" 라는 문구가 기만적....

 

 

망루에서 탈출하는 자들을 그대로 사살하던 감시 초소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기철조망 

공개처형하던 교수대

 

10동과 11동 사이,  사람들을 총살하던 공개처형장입니다.

 

건물 아래 왼쪽에서 세번째 창문이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이 계시던 아사 감방입니다.
(사형장면을 못 보도록 창문을 덮개장치를 해주두었답니다)

 

 

유골이 담긴 추 모 비

제 2 수용소인 브제진카에서 후에 발견된 사체들을 화장하여 모아놓은 위령비입

 

분류를 기다리느  유태인들- 이장교 손끝이 바로  죽음의길로....

죽음의천사라 불리는 악명높은 멩겔레(왼쪽 2번째)

독가스 1통 으로 400명을 죽일수 있다고 한다 

사자의 머리카락이  카펫을 짜기 위해 부대에 담겨져있다

 

사자의 유품 - 지체장애자의 보호장구  

사자의 유품 - 가죽 가방

사자의 유품- 신발창 속에 값진 귀중품이 숨겨져 있을까 봐 신발을 모아두었다'

나중에 뜯어 보려고. 

시체 소각로 건물 

소각로 - 시체가 소각로에서 탈 때 기름을 받아 내는 설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독 가스실

,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이 돌아가신 방.

1941년 7월 수용소에서 탈출한 한 수감자를 대신하여 10명이 무작위로 착출됩니다.
끔찍한 아사 감방으로 보내져 목숨을 잃는 것이지요.
이 중 한 사람이  가족들을 남겨두고 죽을 수 없다고 울부짖자

콜베 신부님이 당신이 대신 죽겠다고 자청하고 나섭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를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지요.
콜베 신부님 때문에 살아 남은 사람은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서

 1982년 콜베 신부님의 시성식에참석하였다고 합니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 

1894년 신심 깊은 폴란드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레이몬드' 라는 세레명을 받았고
1907년 14세가 되던 해 프란치스코회의 꼰벤뚜알 수도회에 입회하여

'막시밀리아노'라는 수도명을 받습니다.
수도원 장상들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인 콜베를 로마로 유학 보내어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는 신학 박사 학위도 취득합니다.
평생 깊은 성모신심 안에 머물렀던 콜베 신부님은 어려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는데,
두 개의 상자, 즉 순결을 뜻하는 흰 상자와 순교를 뜻하는 붉은 상자를

들고 나타나신 성모님과의 만남입니다.
두 개 중에 어느 것을 원하냐는 성모님의 물음에 두 가지 다를 원한다고 답하자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잔혹한 장소에서 사제로서의 사랑의 삶을 죽기까지 실천하다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에  페놀주사에 의해 세상을 떠나십니다.
그분이 순교한 방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하는 안타까움 가득합니다.

 

 

앞에 있는 분이 콜배신부님

김 레오 불로그에서  2012. 8. 14. 11:31 작성

 

  • ?
    레오 2025.08.14 21:35
    8월14일은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배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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