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성의 성벽과 성문
현존하는 예루살렘의 성벽(城壁)은
여러 시대를 통해 이루어진 과거의 합작품(合作品)이라고 할수 있다.
성벽이 현재의 모습처럼 최종적으로 재건 된것은 1542년 터어키의
슐레이만 황제 때였다.
이 성벽의 둘레는 4Km 이고 높이는 12m 정도 된다.
34개의 탑이 있고 8개의 성문이 있다.
동쪽에는 성 스테파노 성문, 황금문(1530년 터키군이 봉쇄),
서쪽에는 자파성문, 남쪽에는 오물성문,시온성문,
북쪽에는 뉴 게이트, 다마커스 성문, 헤로테 성문이 있다
황금문
황금문'은 '자비의 문'이라고도 불리고, 동문이라고도 불린다.
이 문은 A.D.7세기에 지어졌으며 예루살렘성의 동쪽 벽에 위치하고 있다.
그 동쪽 벽에서는 유일한 문이며 성전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현재의 문은 예수님이 입성했던 옛 문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초기 유다 전승은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서 온다고 전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준비하기 위해 이 문 가까운 곳에 묻히고자 했다.
A.D.1530년,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터어키 총독은,
메시아가 다시 이 문을 통해 들어와 자기를 쫓아낼까 두려워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봉쇄령을 내렸다.
8개의 성문 중 가장 아름다워 미문으로 불렸으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
재건한 성전 시기에는 슈산문이라 하여 제사장들이 출입하였다고..
사자 성문
전설에 의하면 두 마리의 사자가 슐레이만 2세의 꿈에 나타나
부서진 성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해서 1540년경 성문을 보수했고
그 꿈을 기념하는 뜻에서 그 명칭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원래의 명칭은 '바브 엘 고르(요르단 성문)'였는데,
오늘날 이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성문 근처에서 스데파노 성인이 순교 했다고 해서(사도 7, 54-8, 1)
그를 기억코자 하여 성 스테파노 성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집이 이 성문 근처에 있었다고 해서 안나 성문이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바브 싯티 마리암(마리아 성문)'이라고 부른다.
마리아의 무덤이 이 성문 근처, 즉 키드론 계곡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였다.
1920년에 영국군은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래의 성문을 개조하였다.
1967년 6일전쟁시 이스라엘군들은 이 성문을 점령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고gksek
시온게이트
이 성문은 성벽의 남서쪽에 위치한 문으로 시온산과 통하는 문이라고 영어로 시온게이트
히브리어로 "사아트 시온" 이라고 합니다.
유대인 구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으로
분쟁이 잦다 보니 총탄 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차량도 통행한다.
자파성문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자파, 또는 요빠라는 도시와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히브리어로는 '시아르 요빠'라고 불린다.
아랍어로는 '바브 엘 카릴'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친구 문'이란 뜻이다.
일카릴(하느님의 친구)은 곧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문이라고도 한다.
이 성문은 또한 아브라함의 묘가 위치한 헤브론과 통한다고 하여 '헤브론 성문'이라고도 부른다.
오물 성문
예루살렘 시내의 모든 오물이
이 성문을 통해서 키드론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에 버려졌다고 해서
영어로는 '덩 게이트', 히브리어로는 '사아르 하아슈포트'라고 부른다.
이유인즉, 16세기경 북아프리카 무어족(회교도)이 이주하여 이곳 성문 근처에서 살았다고 해서이다.
현재의 성문은 요르단 사람들에 의해 개조된 것이다.
1948년 자파 성문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봉쇄되자
성벽 안으로 자동차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확장해 만들어진 성문이다.
헤로데 문(초소의 문)
헤로데 안티파스의 궁전이 이 성문 근처에 있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린다.
유다인들은 '사아르 헤페라힘(꽃들로 장식된 성문)
회교도들은 '바브 에즈 사히라(초소의 문)라고 부르고 있다.
뉴 게이트 (The New Gate)
1889년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의 통로를 위해 새로 만든 성문이다
다멕섹 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