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리스-찌포리(zippori)
이곳 세포리는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헬라(그리스), 유대, 바벨론, 비잔틴, 이슬람 문화,십자군 시대의 문화와
오토만 제국의 유적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Joachim) 의 고향이 이곳 세포리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서학적인 발굴은 로마 시대의 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노천극장과
기독교 초기의 교회당 유적들과 십자군 시대의 요새 등이 있습니다.
세포리(Tzippori)는 한 때 갈릴리 지방의 유대교의 중심지였습니다.
AD 7 세기 이후에 아랍의 이슬람이 이곳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부터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Saffuriya 라고 불리는 아랍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갈릴래아의 영주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기원 후 18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 도시를 건설하여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게 헌정하기 전까지는 갈릴래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러므로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따라 어린 예수도 이 길을 걸어 세포리스를 왕래하였을 것이다
유적 : 로마 극장, 두개의 교회, 십자군 성채, 40개 정도의 모자이크
십자군 시대에 처음 세워지고 아랍시대에 증축된 십자군의 타워의 모습입니다.
석관이나 건물의 잔해를 이용하여 세웠던 타워입니다
.
이곳은 BC 7 세기부터 앗시리아, 바벨로, 페르시아 등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며 요세화를 하였던 곳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이곳은 굉장히 큰 로마식의 도시였으며 정치적으로 활동이 왕성했던 곳이었음.
예수님 시기는 헤롯 안티파스의 시기인데 바로 이전 시기에 헤롯 대왕이 죽으면서
이곳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을 진압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또는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음,
그런 도시를 받은 헤롯 안티파스는 이곳을 잘 정비하고 도로도 다시 깔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예수님도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였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함.
이곳 세포리는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헬라(그리스), 유대, 바벨론, 비잔틴, 이슬람 문화,
십자군 시대의 문화와 오토만 제국의 유적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Anna와 Joachim의 고향이 이곳 세포리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서학적인 발굴은 로마 시대의 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노천극장과
기독교 초기의 교회당 유적들과 십자군 시대의 요새 등이 있습니다.
세포리(Tzippori)는 한 때 갈릴리 지방의 유대교의 중심지였습니다.
AD 7 세기 이후에 아랍의 이슬람이 이곳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부터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Saffuriya 라고 불리는 아랍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