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나자로 기념성당과 무덤
오늘날의 기념성전은 라자로의 부활을 기념했던 비잔틴 시대의 기념 성전 자리 위에 지어진 것이다.
라자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처음의 기념 성전은 4세기 말경 지진으로 파괴 되었고,
이때의 모자이크와 성전 기둥들을 성전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5세기경에 다시 성전이 지어지고 십자군 시대에는 더욱 크게 확장이 되었고,
1138년엔 예루살렘 왕비에 의해 베네딕도 여자 수도회에 성전 관리가 맡겨졌지만
그후 1187년 이슬람 살라딘에 의해 모두 파괴 되어 버렸고,
14세기 경에는 이 기념 성전터에 회교 사원이 들어섰다.
나자로기념 성전(프란치스코회 소유)
성당정면의 성 라자로와, , 성녀 마르타 . 성녀 마리아의 모습
또 성당 마당 한 곳 비석으로는 이런 성구가 적혀 있네요.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루카 10:42)
중앙 제대 뒤쪽에 있는 모자이크,(라틴어)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25)
마르타와 마리아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것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루가 10, 41-42)
나자로의 무덤
현재 무덤은 회교 사원 아래에 있으며 이슬람 신자가 관리하고 있고,
회교 사원이 있는 중앙의 무덤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기념성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기념 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나자로의 기념 성전 또한 파란만장한 성지의 역사를 한눈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부서지고 쪼개져 폐허가 된 라자로의 무덤이 자리했던 이 기념 성전터를 열심한
후작 부인 폴린느 드 니콜라이가 1862년에 구입하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에 기증했고,
1949년 수도회에서는 본격적인 고고학 답사와 발굴 작업을 거쳐
1953년 현재의기념 성전을 지어 1954년에 축성 하였다
무덤내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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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화과나무
키가 작은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재산을 나누어 구원을 받은 곳.( 루가 19,1-10)
삭개오의 돌 무화과 나무 (뽕나무)
돌무화과 나무는 잎은 뽕나무를 닮았고, 열매는 아주 작은 무화과를 닮아서 돌 무화과 나무라 한다.
이 돌무화가 나무는 여리고 입구 삼거리에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 삭개오가 올라간 2000년 된 나무라고 옆에 설명이 되어 있다.
나무의 키는 20미터나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