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by 레오 posted Jun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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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서기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하의 베드로(Peter of Prague) 신부는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 말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聖體布)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그는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또(Orvieto)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보고를 듣고 나서 그를 사면(赦免)하셨다.

교황께서는 즉시 이 일을 조사하도록 성직자들을 파견하셨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교황께서는 그 교구의 주교에게 그 성체와 피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또로 모셔 오도록 명하셨다.

추기경들과 대주교들, 그리고 그 밖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교황께서는성체를 모셔오는 행렬을

맞으셨으며, 성체와 성체포를 대성당 안으로 모셨다.

성혈이 묻은 성체포는 아직까지도 오르비에또의 대성당 안에 정중하게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 기적으로 격려되신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에게 성체를 공경하는 기도문을 짓도록 명하셨다.

이 기적이 있은지 1년이 지난 1264년 8월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문을 소개하셨으며,

성체 축일을 설정하셨다. 

오르비에또의 대성당을 찾아오는 많은 순례자들은

그 곳에 이어서 볼세나에 있는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으로 가서 그 기적이 일어났던 현장을 둘러본다.

성당의 북쪽 복도로부터 기적이 일어났던 소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체 축일 설정의 700주년이었던 1964년 8월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기적의 성체포가 
모셔져 있는

오르비에또의 대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셨다. 


 12년이 더 지난 1976년에 바오로 6세께서는 볼세나를 방문하셨으며, 그 곳으로부터 그 때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던 제 41차 국제 성체 대회에 텔레비젼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교황께서는 성체가 "위대하고도 무진장한 신비(a mystery great and inexhaustible)"라고 말씀하셨다.  

 

볼세나의 성체 기적은 교황 우르바노 4세의 뜻에 따라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1264년 특별 교서를 발표 <주님의 성체>축제를 열게 되었다.

이는 이후 가톨릭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기원이 된다

볼세나의 크리스티나 성당

   볼세냐에 있는 성 크리스티나 유해가 모셔진, 4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여기에서 성체기적이 일어남)

 

볼세냐 성녀 크리스티나 유해가 모셔진 성당 앞

이 성당은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성당내부에 들어가면 크리스티나의 무덤과 성체기적이 일어났을당시의 제대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보헤미안 출신베드로 신부가 순례중 미사를 드려 성체 기적이 일어난 최초의 제단   

 

​                            

성녀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성체 기적이 일어난 최초의 제대   

 

     성녀 크리스티나의 유해

한쪽 벽면에는 1263년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오리지널 제단이 있는데,

원래의 위치는 현재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있었고, 1540년경 현재의 장소로 옮겨왔습니다.

 

 제단을 받치고 있는 검은색 화산석에는 어린아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 돌이 볼세나 호수에서 성녀를 밀어 올려 성녀를 살렸던 바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성체) 경당 팻말                                         

  미사를 드리던 중에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던 제대

  

체에서 떨어진 피가 묻은 바닥의 대리석

 

     볼세나의 성체 기적(바티칸 박물관, 1512년, 라파엘로)

 

 

 

성체포가 모셔져있는 올르비에또의 주교좌성당

당시 피로 물들었던 제대와 성체포는 현재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보존되고있다

1370년경 완공된 두오모는 이탈리아의 고딕 건축을 대표하고있으며 내부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성체포가 모셔져있는 올르비에또의 주교좌성당

제대위의 모셔저있는 성체포

 

거양성체 때, 성체포 외에도 돌에 떨어진 성혈을 감실 위로 모셔 놓았다. 

 

 

오르비에또 두오모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후 


 

 

 절벽위의 중세도시 오르비에토  (Orvieto) 

 

높은 바위산위에 위치한  오르비에토는 도시외곽이 성벽으로 둘러싸여있어 

영화에서 본듯한 요새처럼 보이기도하며, 새의 둥지처럼 느껴져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다 

오르비에트는 초록의 하트 움브리아주에 있으며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언덕 위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오르비에트는 세계최초 슬로우 시티로 지정받는 도시이다.

슬로우 시티(slow city)는...

치타슬로(Cittaslow)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도시 운동으로, 느리게 살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자유로운 옛날의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느림의 삶' 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이다.

우리 나라는 전남 완도군 청산면에 있는 청산도 등이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오르비에토는 해발 약 200m 위 돌산에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곳으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전용열차를 타야만 했다.

이른바 푸니콜라레라고 부르는 산악 전용열차를 타고 마을을 방문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찿는 방문객은 수없이 많다. 이 정도 불편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오르비에토 는 슬로우 시티답게 마을 안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며모든걸

자급자족 하는 생활로 패스트푸드,  대형마트가 없는 특징입니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거리 곳곳에는웅장한 성당과 석조 건축물들을 통하여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